보고 싶다 ‘하고’ 싶다
평소엔 손가락에 깁스라도 한 것마냥 전화도 잘 안 하면서 술만 마시면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지껄이는 인간. 남자들의 취중 전화. 과연 그의 진심은 무엇일까?
우~웁스!” 어젯밤의 악몽을 잊고 싶다. 1차만 끝내고 집에 가겠다고 했건만 친구 녀석들의 성화로 잠깐 앉았다 가려고 한 게 화근이었다. 소주 각 2병에 맥주 3000cc. 숙취가 몰려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순간 번뜩였다. “우~웁스!” 갈증으로 목이 타는데도 다짜고짜 휴대폰부터 살폈다. 최근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여섯 번이나 찍혀 있는 그녀의 이름. 젠장 또 저질렀다. 취중 통화 술만 마시면 생기는 남자들의 조건 반사 작용.
어젠 또 무슨 헛소리를 지껄였을까. 그녀와의 통화 내용을 기억하려 애쓴다. 초반엔 나름 괜찮은 것도 같다. 지금 뭐 하는 중이냐 혹시 나 보고 싶지 않았느냐 나도 자기가 보고 싶어 죽겠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전화로 ‘깜찍이 쪽쪽 뽀뽀’를 해 주겠다는 둥 갖은 알랑방귀를 뀌어 대던 내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평소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초절정 닭살 이쁜 짓’이다. 심지어 노래도 불러 준 것 같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남자들은 술 취하면 여자에게 전화를 거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제정신일 때는 전화 한 통 없다가도 ‘곤드레만드레’만 되면 10분이 멀다 하고 전화질을 해 댄다. 그리고 애교 있는 술주정을 늘어놓는다. 이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보고 싶다’. 아름다운 말임에 틀림없다. 여자들은 그의 꼬부라진 발음과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짜증이 나려다가도 이 말만 들으면 무장 해제된다. 그러곤 생각한다. ‘이 남자 술 취하면 제법 귀여워진단 말이야. 근데 참 이상해. 평소엔 못하고 왜 술만 마시면 전화한단 말이지. 속마음이 뭘까? 소심한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한 술버릇일까? 그것도 아니면 객기일까?’
우리 남자들은 교활하다. 아무리 고주망태가 되더라도 ‘보고 싶다’는 멘트만 꾸준히 날려 주면 여자들이 삐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그리고 이것을 현명하게(?) 이용할 줄도 안다. ‘보고 싶다’는 앞으로 진행될 프로세스(?) 동안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려는 남자들의 올가미다. 혹시 우리의 속내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덫. 솔직히 말해 우리 남자들 술 취하면 ‘하고’ 싶어 미친다. 평소 점잖은 사람일지라도 술이 과하다 싶으면 섹스하고 싶어 죽을 지경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그녀와 ‘합체’해 욕정 ‘로봇’이 되고 싶어 한다. 이미 잠자리를 함께한 여자에게 거는 전화라면 민망할 것 없다. 나의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뒤 자자고 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평소 마음만 두고 있는 그래서 같이 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던 그녀에게 거는 취중 전화다. 술김에 전화했지만 자자는 말이 차마 안 나온다. 당연하다. 아무리 술에 취했더라도 ‘섹스하고 싶어’라는 무의식보다 ‘그래도 입 밖에 내선 안 돼’라는 이성이 앞서기 때문이다. 대신 눈앞에는 섹스라는 두 글자가 치열하게 아른거린다. 술만 취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무의식적 섹스 증후군’인가 보다. 남자들의 취중 통화 제1공식. ‘보고 싶다=취중 진담을 가장한 원초적 본능의 발현’.
그렇다고 남자들의 ‘보고 싶다’는 말이 완벽한 허구는 아니다. 술 취하면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순수하게. 하지만 이는 단지 1차적 반응일 뿐이다. 보고 싶은 다음에는 얘기하고 싶어지고 얘기한 다음에는 어루만지고 싶어지고 그렇게 한참을 비비고 있다 보면 섹스하고 싶어지는 게 남자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한다. 속내는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전화기에 대곤 ‘예쁘고 아름다운’ 얘기만 늘어놔야 하니 어찌 멀쩡한 소리만 입 밖으로 나오겠느냔 말이다. 남자들의 본심이 이렇게 짐승 같은 줄 몰랐다며 혹시라도 놀랐다면 이번에 확실히 알아 두었으면 한다. 술 마신 후 여자랑 자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말을 태연하게 내뱉는 녀석이 있다면 더 더욱 당신에게 볼일(?)이 있는 능구렁이 수컷이자 진실을 숨기려는 인간이라는 사실.
간단명료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남자는 ‘배드 보이’다. 남자도 술 취하면 졸립다. 온몸으로 퍼지는 알코올로 인해 정신은 혼미해지고 빨리 집에 들어가 눕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졸리면 자고 싶은 게 모든 동물의 본능. 그런데 이왕 자는 거 여자랑 같이 자고 싶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 밤도 전화를 건다. 그러곤 보고 싶어 죽겠다고 아양을 떤다. 남자들의 취중 통화 제2공식. 보고 싶다 ‘하고’ 싶다.
그러나 술에 취해 ‘보고 싶다’고 전화해 놓고 며칠 동안 깜깜 무소식이라면 게임 오버다. 그는 당신과 사귀고픈 생각이 없다. 그저 밤에만 술취한 그날 밤에만 보고 싶었던 것일 뿐….